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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공지] [논단] BIM, 누구를 위한 의무인가
관리자
2026-05-06 221
[논단] BIM, 누구를 위한 의무인가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건설정보시스템) 도입 논의가 시작된 지 수년이 지났다. 국토교통부는 대형 공사를 중심으로 BIM 의무화를 추진하며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견인하고자 했다. 정책 발표 당시 시장은 기대에 부풀었고, 대형 건설사와 엔지니어링 기업들은 조직과 기술 투자에 나섰다. 최근 정부 관련부처가 BIM 활성화 로드맵(2020년 발표)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BIM 활성화 로드맵 현실은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핵심 쟁점은 ‘추가 비용’이다. 엔지니어링 업계는 BIM 도입에 따른 비용 보전을 요구하지만, 발주자는 계약 조건을 근거로 결과물 제출만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기존 2D 도면에 더해 3D BIM 모델까지 이중으로 생산해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발주자가 외면하면서 보상 없는 의무만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 공사 현장은 여전히 2D 도면 중심으로 운영된다. 설계 변경이 발생하면 2D에 반영되지만, BIM 모델은 초기 제출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준공 이후에도 운영·유지관리 단계에서 활용되는 것은 2D 도면이다. BIM은 현장과 단절된 채 ‘형식적 산출물’로 남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BIM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미 글로벌 건설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동과 신흥국을 포함한 주요 시장에서는 BIM이 일상적인 현장 공사 인프라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현장에서 BIM 기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건설의 본질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원수가 75만명을 넘는 Project Management Institute(PMI, PM전문가협의회)는 1999년 건설을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한 통합 서비스’로 정의했다. 기획, 설계, 시공, 운영 및 유지관리 등 전 단계가 통합돼 관리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 정의에 따르면 통합의 주체가 발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선진 시장에서는 발주자가 BIM 플랫폼을 구축하고, 참여자는 해당 플랫폼에 접속해 협업한다. BIM 플랫폼 주인은 발주자지만 기술 지원은 설계엔지니어링 계약자다. 데이터는 단순 산출물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 주기를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설계·시공 단계의 ‘생산기술’로 BIM을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설계와 시공의 관리 주체와 계약이 분절돼 있다. 이 차이가 활용 격차를 만든다.

BIM 도입의 본래 목적은 명확하다. 생산성 혁신이다. 미국의 대형 건설업계는 BIM 도입 이전 재설계 및 재시공으로 인해 최소 20%에서 최대 40%에 달하는 비용 손실을 겪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정보기술을 프로세스에 통합하려는 움직임에 등장한 것이 BIM 기술이다. 즉, 비용을 증가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비용을 절감하는 수단이다. 건설의 전 단계를 통합하여 준공 후 운영 및 유지보수 단계에서 BIM으로 디지털 트윈으로 운영으로 연결하게 된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 중반부터 2D- CAD를 전면 도입했지만, 복합 공종 간 간섭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실제 구조물을 1/25로 축소한 물리적 모델까지 제작했다. 플라스틱 모델 제작에 1986년 기준가격으로 60억원을 넘었다. 이후 3D 기술이 발달되면서 플라스틱 모델은 디지털로 대체됐다. 오늘날 BIM과 동일한 개념이다.

이제 방향은 분명하다. BIM 정착을 위해서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운용 체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BIM의 최종 수요자는 발주자지만, 데이터의 최초 생산 주체는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데이터 소유권은 음원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최초 생산자, 즉 설계엔지니어링 계약자에게 있다. 데이터 소유권과 활용 권한, 유지·보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비효율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BIM은 프로젝트 완료 시점까지 지속적으로 갱신·관리돼야 한다. 이는 발주자와 엔지니어링 간 협업 구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플랜트와 원전 프로젝트에서 엔지니어링 조직이 현장에 상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설계 변경은 물론 완료된 시공 현황이 반영돼야 운영 및 유지보수 단계까지 활용이 가능하다.

BIM은 계약 의무가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변했다. 계약 조건에 따른 형식적 요구가 아니라, 생산성 혁신을 위한 필수 기반으로 인식해야 한다. BIM 로드맵은 선택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구조적인 과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BIM은 건설공사에 참여한 모든 주체가 활용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 의무보다 혜택의 공유가 더 절실한 것이다. 가야 할 길이라면 시간을 늦출 필요 없다.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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