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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공지] [논단] WTO체제의 종말···한국건설엔 새 도전의 기회
관리자
2026-07-15 190
[논단] WTO체제의 종말···한국건설엔 새 도전의 기회

1995년에 출범한 WTO체제는 지난 30여년간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대변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오랫동안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돼 왔던 ‘영미식 시스템’을 대신할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가 필요하다.

WTO체제에서 영미식 시스템은 규제완화와 시장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공급자 수가 많을수록, 시장에서의 경쟁이 더 치열할수록, 소비자가 누리는 경제적, 사회적 후생은 더 커지기 때문에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경쟁을 제약하는 모든 규제장치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WTO체제에서는 상식으로 통했다.

영미식 시스템에서는 전문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건설사업관리와 감리가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이를 본받아 건설사업관리(CM)가 건설산업기본법에 ‘제도’로서 도입됐고, 지난 30여년간 국내 건설산업을 구성하는 하위산업부문으로 성장했다. 또한 영미식 시스템에서는 경험과 역량에 기반한 전문엔지니어 자격제도(PE 등)와 전문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계약과 문서 중심주의도 중요한 특징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성문법이 없는 이른바 불문법 국가다. 법령이 없으니 당사자 간의 계약과 계약서가 중요했던 것이다. 법령을 대신해, 계약과 관련해서는 FIDIC 계약조건이나 영국의 RIBA, 미국의 AIA 등 권위 있는 기관에서 제시한 표준계약양식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 투명하고 다단계적인 분쟁해결 메커니즘도 영미식 시스템의 특징이며, 건설공사 수행과정에서 발주자와의 법적 분쟁이나 클레임은 제도화돼 있었다.


이같은 글로벌 스탠다드로서의 영미식 시스템은 WTO체제의 종말을 맞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와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WTO체제의 종말을 초래한 결정적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건설산업에서도 영미식 시스템은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면서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던 영국과 미국의 건설산업은 10~20년 전부터 급격하게 위축됐다. 지금 영국과 미국 건설산업이 당면한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영미식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기가 민망해진다. “영국은 더 이상 아무 것도 건설할 수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고 영국인들 스스로가 탄식하고 있다. 복잡한 규제와 절차 및 과도한 소송 등으로 인해 공사비 폭증과 공기 지연은 일상화됐고, 고질적인 전문기술인력 및 숙련기능공 부족에다 저렴한 동유럽 노동자들의 이탈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30년간 건설이나 제조를 게을리 하다 보니 전력망, 용수, 도로 등 인프라 수준이 대단히 열악하다. 연방정부-주정부-지방정부에 이르는 다층적인 규제와 악명높은 인허가 지연, 주40시간 근무 준수에다 엄격한 노동규제와 안전규제 등으로 인해 생산성도 낮다. 클레임을 비롯한 각종 법적 분쟁의 일상화와 만성적인 건설기술인력 및 숙련기능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이제 미국은 원천기술과 특허를 갖고 있어도 자국인력만으로는 더 이상 원전이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개방성과 투명성, 시장경쟁과 성과주의를 지향하던 영미식 시스템의 장점은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미국 우선주의가 표방하는 바와 같이, 영국과 미국은 개방이 아니라 폐쇄와 고립을 선택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의 상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국 내에서 필수적인 건설수요조차 대응하지 못하는 나라가 돼 버렸다. WTO체제의 종말과 함께 이제는 건설산업의 글로벌 스탠다드도 과거의 영미식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새롭게 도래할 건설산업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래 2가지 방향성은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모든 나라에 적용될 단일 시스템이 아니라 블록별 로컬 스탠다드가 형성될 것 같다. 영국과 미국식의 시스템이 아니라, 오늘날 파편화되고 있는 글로벌 정치경제체제와 마찬가지로 미국 블록, 유럽 블록, 중국 블록,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 블록과 같이 자국우선 내지 블록별 동맹이익을 우선하는 형태의 블록별 로컬 스탠다드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AI 전환(AX)이나 디지털 전환(DX) 같은 기술기반의 표준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의 BIM ISO 표준은 글로벌 표준으로 정착 중이고, 자동화 로봇기술 및 OSC(Off Site Construction) 확산도 점차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고 있다.

WTO체제의 종말과 글로벌 스탠다드의 전환은 한국 건설산업에도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AI 시대를 맞아 ‘영미식 시스템’을 대신할 새로운 ‘K-건설 시스템’을 제시하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이상호 유창E&C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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